“트럭이 멈추면 대한민국이 멈춘다.” 국내 물류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사람이라면 이 말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입니다. 수출입 물동량의 90% 이상이 항만과 내륙을 오가는 트럭을 통해 처리되고, 전국 대형 마트, 공장, 물류센터의 운송도 대부분 트럭 운송이 담당합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정비사’입니다. 대형차는 고장이 잦고, 정기적인 점검 없이는 운행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중요한 연결고리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정비사를 구할 수 없어 트럭이 정비소 앞에 몇 주씩 세워져 있고, 이로 인해 배송이 지연되고, 납품 계약이 취소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내 트럭 산업은 ‘정비사 부족’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물류 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달라질 것입니다.
국내 트럭정비사 수급 현황과 고령화 문제
우리나라의 대형차 정비 산업은 이미 10년 전부터 인력 부족의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하지만 그간 뚜렷한 대응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현재는 정비사 평균 연령이 50세를 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과 교통안전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등록된 대형차 정비 인력의 43% 이상이 50대 이상이며, 신규 인력 유입은 지난 5년간 연평균 2% 미만에 그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떠난 이후를 준비할 세대가 없다는 점입니다. 청년층은 정비사라는 직업 자체를 선택지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3D 업종의 전형으로 인식되며, 실제로 정비 현장은 고온·고소·협소한 작업환경과 무거운 부품을 다루는 체력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의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대학의 자동차 관련 학과 중에서도 ‘대형차 정비’를 다루는 커리큘럼은 희박하며, 실습장비나 트럭 실물조차 갖추지 못한 곳이 태반입니다.
이처럼 양성 체계 자체가 붕괴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일부 운송사는 아예 사내 정비 인력을 직접 고용하거나 외주가 아닌 자체 정비소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는 자금 여유가 있는 대기업에 국한된 방식입니다. 중소 운송업체나 개인 화물차주는 정비소에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간단한 수리를 직접 처리하려다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비용
정비사 부족이 초래하는 문제는 단지 운송 지연이나 고장률 증가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산업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며, 동시에 공급망 전반에 도미노처럼 영향을 주는 복합적 위기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식품 유통 분야입니다. 냉장·냉동 트럭이 정비를 받지 못하고 고장 날 경우, 수천만 원 상당의 식재료가 폐기될 수 있으며, 이는 식당, 유통업체, 소비자까지 피해가 확산됩니다.
물류 스타트업 ‘F사’는 2023년 여름, 계약된 신선식품을 예정된 시간에 배송하지 못해 6개월간의 대형 유통사 계약이 해지됐습니다. 사유는 단 한 가지, “트럭의 브레이크 패드 문제로 하루 이상 지연 발생.” 정비 인력이 없어 인근 정비소 3곳을 전전했지만 모두 2~3일 후에야 수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그 사이 납품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 문제는 심각합니다. 대형차 사고는 일반 차량보다 피해 규모가 큽니다. 국토부 발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고장 관련 대형차 사고 중 ‘정비 불량’이 주요 원인인 사고 비율은 17.5%에 달하며, 그로 인한 인명 피해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속도로에서의 사고는 단 한 번의 충돌로 수십 명의 인명피해와 수억 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유발하기 때문에, 예방 차원의 정비는 생명과도 직결됩니다.
정비사 처우와 인식 개선의 필요성
현재 대형차 정비사의 평균 연봉은 약 3천만 원 수준입니다. 위험성과 기술 숙련도를 감안하면 이는 매우 낮은 수준이며, 고된 노동에 비해 사회적 대우도 부족합니다.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청년 일자리 프로그램에서도 정비사 직군은 제외되거나, ‘소외 직업군’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정비사 직업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정책의 사각지대를 방증합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정비사의 처우를 현실화해야 합니다. 기본급 인상, 경력에 따른 승급 체계, 장기근속자 포상제, 작업환경 개선 등이 병행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정비는 단순 노동이 아닌 고급 기술직’이라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중요합니다.
이미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정비 기술자 자격을 국가 기술 자산으로 분류해 지속적인 재교육과 복지 지원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3년제 직업학교를 통해 트럭 정비사를 양성하며, 졸업 후 평균 연봉은 5만 유로(한화 약 7천만 원)에 달합니다. 일본은 정비사에게 숙련기능인 자격을 부여하고, 해당 자격 보유자에 대해 연금 혜택과 노후 보장을 제공합니다. 한국도 이제 정비사를 단순 노무직이 아닌 ‘산업 핵심 기술자’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정책적 우대를 해야 할 시점입니다.
정책적 대응과 교육 혁신 방안
정부 차원의 대응도 절실합니다. 지금처럼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정비 인력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령화는 더 빨라지고, 기술 격차는 커질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다음과 같은 중장기 전략이 필요합니다.
- 1. 청년 정비사 양성 프로그램 확대: 대형차 전용 정비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특성화고와 전문대 확대. 현장 실습 중심의 커리큘럼 강화와 장비 현대화.
- 2. 고용 인센티브 제공: 정비사를 채용한 기업에 대한 고용 장려금,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청년·여성 정비사 대상 특별 장학금 신설.
- 3. 경력단절 기술자 재진입 지원: 과거 정비 경력이 있는 고령 인력의 재취업 훈련과 파트타임 정비사 제도 도입.
- 4. 정비사 국가자격 체계 강화: 트럭 정비 분야의 국가기술자격시험 체계를 현대화하고, 시험 응시 기회를 확대.
- 5. 기술 기반 정비 인프라 구축: 원격 진단 시스템, IoT 기반 점검 솔루션, 디지털 정비 이력 관리 도입 확대.
이처럼 다각도의 정책과 민간 협력이 병행될 때만이, 정비사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고 안정적인 산업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의 현실을 되짚어 보면, 국내 대형차 정비 산업은 너무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수많은 트럭이 안전하게 운행되고 있었고, 그 바탕에는 이름도 없이 묵묵히 일하는 정비사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인력 충원이 아니라, 정비사의 가치를 다시 정의하고, 이 직업이 정당하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입니다.
정비사가 있어야 트럭이 달리고, 트럭이 달려야 산업이 흐릅니다. 이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진실을 기억하며, 우리 사회가 정비사 문제 해결에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길 바랍니다. 그때야 비로소 ‘달리는 대한민국’을 지탱할 수 있을 것입니다.